이덕일의 고금통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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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주목! 이 책] 이덕일의 고금통의1·2 外
이덕일의 고금통의1·2(이덕일 지음, 김영사, 각권 520쪽, 각권 1만8000원)=임금에게 쓴 소리를 했던 사간원이 지금도 존재한다면? 정조의 화성축조는 일자리 창출의 모범 답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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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알림] 오늘부터 새 기자칼럼 오피니언면에 연재
6월부터 오피니언면에 기획칼럼 ‘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’과 ‘이영희의 사소한 취향’이 연재됩니다. 5월 말로 막 내린 ‘이덕일의 고금통의’를 대신하는 두 칼럼은 매주 목·금요일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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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] 고금통의를 마치면서
이덕일역사평론가시절이 하수상할 때 잘못 나서면 뒤끝이 좋지 않다. 그래서 세상을 피해 숨는 은자(隱者)들이 있었다. 은자는 야은(野隱)과 이은(吏隱)으로 나눈다. 야은은 초야에 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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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] 장인우대
이덕일역사평론가제자 번지(樊遲)가 농사일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자(請學稼) 공자는 “그 일은 내가 늙은 농부보다 못하다(吾不如老農)”고 사양했다. 농사는 전문가에게 물으라는 뜻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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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] 임진년의 기억
이덕일역사평론가선조 25년(1592), 임진년 4월 13일(음력). 임진란이 발생했다. 우리는 그간 일본이 ‘느닷없이 습격했다’고 가르쳐 왔다.그러나 사실은 다르다. 선조 23년(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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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] 태평성대
이덕일역사평론가『삼국유사(三國遺事)』 ‘처용랑(處容郞)과 망해사(望海寺)’조에는 번성했던 신라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. 신라 49대 헌강왕(憲康王 : 재위 875~886)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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